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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와 오원 장승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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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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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이인좌의 난 이후로 1911년 홍경래의 난에 이르기까지의 아무런 병란이 없었던 평화스런 시기였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살아온 세월이 좋았던 만큼 그의 그림에도 낙천적인 분위기가 떠돌고 평온하다. 흔히 이 시기를 문예부흥기라고 일컫는다. 특히 정조시대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文化(문화)적인 역량은 조선 후기의 정점을 이루는 것이었다. 국왕이 특별히 아꼈던 까닭에 김홍도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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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통해서 김홍도가 살았던 세상을 엿보자면, 밭을 가는 노인의 얼굴에서는 수고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고생스런 노동을 하는 것 같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 표정에도 ‘나는 힘들어 죽겠소’라는 모양은 없다. 잡석더미의 갖가지 모양에 농담의 alteration(변화) 가 지극히 공교(工巧)하다. 따라서 막바로 임금을 지척에서 모시면서 어명에 따른 특정 그림을 그린 예가 많았던 것이다. 정조 임금 때, 화원의 수는 통상 서른 명 정도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열명은 따로 규장각에 소속시켰으며, 별도로 선발해 특별한 대우를 했다. 구부정한 나무 아래에는 구부정한 노인들이 지팡이를 어깨에 기대고 정담을 나눈다.
다. 게다가 누렁소의 표정은 더 그러하다. 오히려 소의 표정은 여유롭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진실한 ‘선비’의 전형으로서 십삼경(十三經)에까지 확대된 방대한 학문소양을 갖춘 위에 주도면밀한 성품으로 정력적인 국정운영에 임한 결과 다방면에서 국초의 세종대왕에 비길만한 뛰어난 치적을 남겼다. 누렁소도 기특하게 일을 잘하지만, 검둥개도 착실하다. 나라의 살림도 비교적 넉넉하고 그에 따라 각 방면의 文化(문화)도 크게 발달했다. 백성들이 실제로 잘 살 수 있는 정치를 하고 늘 힘을 써서 좋은 성과를 냈던 것은 물론이고, 그 자신의 학문이 오히려 신하들을 가르칠 만큼 깊었으며,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



이처럼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가 살았던 세상은 태평성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무 아래 있는 노인들도 세상살이에 대한 고뇌를 토로하는 것 같기보다는 옆집개똥이의 장가얘기나 아랫집 김노인의 환갑얘기를 하고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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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시골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징적인 풍경으로, 멍에를 메운 누렁소를 쟁기질하는 사내는 그 자세와 표정이 천상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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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당시의 영조와 정조는 오십이년과 이십사년간씩 오래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에 힘을 쏟았던 결과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데, 특히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어려운 입장을 딛고 왕위에 오른 인물인 만큼 부단한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문무양면의 훌륭한 교양을 축적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도서(圖書, 도장)까지도 직접 새겨 쓰는 취미가 있었다 하니 그의 풍부한 예술가적인 기질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따 남아있는 기록을 상세히 검토해 보면, 정조는 흔히 사소한 일로 치부하기 쉬운 화원들의 그림 내용까지도 세세하게 신경을 써서 그 방향을 제시했으며, 우수한 화원과 태만한 화원을 직접 살펴서 올리고 내쳤다는 것이다. 정조는 조선 歷史(역사)상 세종에 비길 만큼 훌륭한 군주였다. 그러나 김홍도는 이 규장각 소속의 화원도 아니었고, 그는 바로 국왕 직속의 대조화원(對照畵員)‘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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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이런 정조의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키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정조가 그의 위민정치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총애했던 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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